1. <이선 프롬> 책 정보 및 줄거리
도서 <이선 프롬>은 작가 이디스 워튼의 삶이 녹아 있는 자전적 소설이자, <여름>과 함께 영미권 여성 작가로서 그녀를 최초로 순수문학의 반열에 오르게 한 그녀의 역작이다. 당시 여성 작가의 작품이 쏟아져 나왔지만 금세 잊히거나 없어진 반면, 워튼은 위대한 작가의 고도에 오른 괄목할 만한 필력의 작가였다.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만큼은 아니지만 오늘날까지 회자되며 세계적 독자를 양산해내고 있는 워튼의 작품은, 당시 흔하지 않았던 여성 작가만의 순수문학이라는 측면에서 문학사적 가치가 있다고 느껴진다. 워튼은 <여름>, <기쁨의 집>, <순수의 시대>< 암초> 등 다양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으며 애정 없는 결혼생활로 불행했다고 전해지는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의 작품 세계와 맞물려 독자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북동부(뉴잉글랜드)의 작은 시골 마을 '스탁필드'는 한 해의 절반이 겨울인 혹독한 지역이라, 눈이 많이 와 내지로 가는 기차가 끊길 정도의 겨울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갇히곤 했다. 화자는 이곳의 지리를 전혀 모르는 외지인으로, 파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스탁필드에 머물며 인접 지역 공장으로 출근하는 회사원이다. 추운 겨울 바깥 활동이 제한돼 심심한 겨울을 버티며 마을 유지의 저택에 머물던 그는 매일 아침 우체국에서 발견되는 중년의 한 남자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는 암울하고 두려울 것은 하나 없는, 말하자면 '반송장'인 상태의 사람이었는데 한쪽 다리를 절고 이마에는 크고 붉은 흉터가 있었다. 마을의 소식통인 하먼의 말에 따르면 그는 이곳의 지난한 겨울을 필요 이상으로 버텨왔기 때문에 저런 몰골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데, 화자는 하먼의 말을 듣고는 그 남자, 그러니까 이 마을에서 '이선 프롬'이라고 불리는 그 남자를 더욱 궁금해한다. 인접 마을부터 온 마을이 가축 병으로 시름하자, 화자는 매일 아침 자신을 기차역으로 데려다줄 말과 농장 지기를 찾는다. 곤란해하던 차에 우연히 화자는 프롬이-늙고 느리긴 했지만-오래되고 건강한 밤색 말을 기른다는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그에게 매번 1달러씩 교통비를 지급하며 기차역 출퇴근을 부탁한다. 유난히 과묵했던 프롬이 궁금했던 화자는 끊임없이 그에게 말을 붙이고, 어느덧 그들 간의 유대가 생길 무렵, 프롬은 억센 눈바람을 피해 화자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두 명의 여인, 집의 분위기. 화자는 그들의 말과 얼굴, 행동을 보며 어떤 '환상'에 사로잡힌다. 그 환상에서는 수십 년 전의 프롬이 보인다. (이하 환상) 오래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연이어 어머니가 돌아가신 프롬은 어머니를 돌봐주러 오던 사촌 '지나'와 결혼한다. 프롬의 어머니를 간병하던 지나마저 병상에 눕자 프롬은 하루가 다르게 바쁜 시간을 보낸다. 프롬이 운영하는 농장과 목재소는 팔리지 않고 나날이 추워지는 겨울은 그를 더욱 힘겹게 한다. 그때 지나를 대신해 집안을 보조하기 위해 지나의 조카 격인 '매티 실버'가 프롬의 집으로 온다. 매티는 집안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스스로 살 길을 찾아온 것과 다름없는 아이였는데 프롬은 서투르고 기분이 오락가락한 면이 있지만 매력적인 그녀에게 점점 이끌린다. 매티와 함께라면 지독한 스탁필드에서의 삶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는 안도감, 그리고 가난과 궁핍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여유, 추위와 맞바꿀 수 있는 사랑이 충만한 결혼 생활 따위를 소망하며. 말이 없는 지나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종종 섬뜩하리만큼 조용하지만 무신경하기만 하다. 한편, 지나는 매티가 자신이 아끼는 그릇을 깨뜨렸다는 사실을 명분으로 그녀를 쫓아내고, 그녀와 서부로 도망갈 궁리를 하던 프롬은 다시금 고민에 빠진다. 결국 매티를 보내줘야 하는 프롬은 마지막으로 그녀와 함께-그녀가 원하던-썰매를 타기로 한다. 한적한 오후 5시, 눈비탈길로 신나게 미끄러지는 그들은 이별을 아쉬워하며 순간을 즐거워한다. 그러던 그때, 매티가 울며 프롬에게 부탁한다. 큰 느릅나무 쪽으로 썰매를 몰아달라고. 썰매 몰기라면 마을에서 제일인 프롬은 그녀의 부탁을 끝내 들어주고자 한다. 이곳을 떠나면 죽은 것과 다름없는 매티, 매티를 보내면 또다시 죽은 듯이 살아야 하는 프롬. 그렇게 충돌한다. 제일 먼저 눈을 뜬 프롬은 어딘가 불편하지만 그보다 모든 것을 후회하기 시작한다. 둘 모두 살아남아 더 큰 불행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현재. 이방인을 초대한 지금. 매티는 생기발랄하던 모습을 잃고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리고 여전히 침묵하는 지나. 그들과 함께 죽은 것처럼 살아 있는 프롬. 이 기이한 세 가족에 대한 화자의 환상이 사실일까? 마을 유지의 딸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는 마치 사실인 것처럼 섬뜩하다.
2. 도서 리뷰
이디슨 워튼의 <이선 프롬>은 명백한 비극이다. 내가 이것을 부정할 수 없는 비극이라 느낀 이유는 프롬에게 일어난 모든 사실이 철저히 자의적인 사건들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요즘 같지 않은 소설 세계관 덕분에 공감 가지 않는 부분이 몇몇 존재한다. 가령 수력으로 물레방아를 찧어 목재를 재단한다든가, 집에 농가가 있어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한다든가, 어머니를 간병한 사촌과 결혼해야 하는 운명을 맞이한다든가 하는 사실들 말이다. 그들 세계에서 불가해한 사건들이 우리에게는 설명되지 않는 지점이 분명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래된 사실들에 집착하지 않도록 하자. 이것은 워튼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작가가 자신의 결혼 생활의 편린을 일종의 사건으로 이야기에 참여시켰다는 점이다. 개인적이라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워튼이 부유했기 때문의 '진짜 프롬'을 공감할 수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조금 문제적이라고 본다면 워낙 개인적이라 그 힘이 은근하여 프롬과 그의 가족이 어떻게 연결되었고 연결되어 왔는지, 혹은 그들 각각이 어떻게 인물화 되었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가령 지나의 행동과 프롬의 인간상은 대체로 인물의 개인성을 위해 존재한다기보다는 총체적인 상황과 의미에 준거한 형상화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의 말과 행동은 일반적으로 '개연적'이라고 말하기 쉽지 않은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문제를 제외하고는 이것은 완전한 비극이라 마치 그리스식 비극을 읽는 것처럼 흥미롭다. 프롬의 인생이 참으로 기구하다고 느끼면서도 저렇게는 살지 않고 싶다든가, 저렇게 근시안적으로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든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매체에서 이 글을 두고 파국의 로맨스라 일컫는 내용을 보았는데 그 말이 맞다. 막장이라고 부르기에는 가볍고 파국이라고 말하면 그나마 덜 미안한 것 같다.
조금 더 쉽게 생각해 보면 인물들의(특히 프롬) 감정은 매우 일상적이어서 그럴듯해 보인다. 긴 병에 장사 없다는 말이 프롬에게 적격인 것처럼 보이니까. 아버지를 보내고, 어머니까지 보낸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지나까지. 너무 팍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나가 죽지는 않았지만 사랑 없이 결혼한 그의 결혼 생활을 생각하면 프롬이 일평생 소처럼 일해서 얻은 게 겨우 과로뿐이니까. 프롬을 동정하려면 하루를 다 소비해도 모자라지만 이 작품이 재미있는 점은 그의 안쓰러움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반항 때문이겠다. 매티라는 인물은 그리 재미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전형적으로 주인공의 마음을 흔드는 인물로 존재한다. 이 작품에서 매티는 살아 있다기보다 수단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아무튼 프롬에게 굴절돼 존재하는 그녀의 존재는 생각보다 흥미롭다. 매티는 프롬을 반항적으로 이끄는 인물이다. 읽다 보면 이 사람이 일부러 이런 식으로 구는지 아닌지 헷갈릴 때가 있지만 어쨌든 프롬은 그녀에게 이끌린다. 프롬과 정반대의 성향인 그녀는 조금 제멋대로에 생기발랄하며 교태 있다. 집안일을 하러 와서 집안일에 큰 관심을 두는 인물도 아니고 그 나이대 소녀답게 놀기를 더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매티가 프롬을 사랑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본인의 인생을 스스로 동정했기 때문에 그와 함께 죽음으로써 외롭지 않기만을 원했을 뿐이다. 프롬이 이런 그녀에게 이끌리는 것은 가정과 사회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을 기원했기 때문인데, 그런 의미로 매티의 관능이 그의 욕망을 자극함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나는 프롬 역시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타 다른 비슷한 소설들과 마찬가지로-졸라의 테레즈 라캥처럼-프롬 또한 사회로부터의 반항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감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아내 지나의 침묵과 이선 프롬, 그의 기원이었다. 종종 프롬이 지나의 침묵을 두려워하는 듯한 묘사가 나타나는데, 그것은 불륜을 도모하고 있다는 그의 마음속 불안함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고 지긋지긋한 속박을 벗어날 수 있다는 은근한 기대 내지는 그러한 마음의 간지러움을 표명하는 묘사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모든 사실이 화자의 '환상'이기 때문에 실체적 진실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묘사가 진실이라면 아내 지나는 남편의 대담한 모략을 다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녀의 침묵은 단순히 '함구'와 '은폐'로써 역할하기보다 사회적 압박에 가깝다. 감옥에 준하는 스탁필드라는 마을부터, 그곳에 대대로 뿌리내린 프롬 집안의 사정을 생각해 보면 왜 지나가 침묵을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이선 프롬은 선조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는데 이러한 반복은 유전적이고 사회(환경)적인 작품의 결정론적인 주제의식을 대변한다. '이선'은 히브리어로 '인내심 있는'이라는 뜻이며, 프롬의 선조인 '이선 프롬'의 아내 역시 '인내심 있는'이라는 뜻을 가진 사람인 것을 보면, 프롬의 가족들은 모두 스탁필드에 갇히고, 묶이고, 묻힌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아내 지나의 침묵은 남편의 외도마저 못 본채 넘어갈 수 있는 사회적인 은폐이자 인내인 동시에 그런 식으로 남편을 옥죌 수 있는 수동적 감옥(압박)과 진배없다는 것이다.
이 소설이 더욱 의미 있어짐에는 프롬의 태세 전환에 있다. 당장이라도 매티와 서부로 도망갈 궁리를 하더니 남들의 시선과 알량한 양심 때문에 다시 농장으로 돌아오는가 하면, 죽기 위해 썰매를 타고 일부러 사고까지 냈는데 막상 생존하고 보니 다시 농장에 돌아가 말들에게 여물을 줄 생각부터 한다는 프롬의 선택을 보면 말이다. 수동적면서 능동적인 프롬의 묘사도 재미있지만, 매티와 함께 있는 그를 묘사하는 방식도 재미있다. 직접적이지 않고 조심스럽지만 알게 모르게 관능적이다. 특히 워튼은 지나가 아끼는 고양이를 이용해 매티와 프롬 사이의 분위기를 설명한다. 고양이는 프롬에게 결정론적인 환경의 힘을 직시하도록 이끄는 존재로 작용한다. 마치 그 자리에 지나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상황을 긴장시키는 역할로 말이다. 워튼의 이러한 간접 묘사는 재미있다. 사실 이런 내용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기법적으로 배울 지점이 더 많다고 느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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